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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나 계승전쟁/전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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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앙 돌격의 실패 ==== '''오후 2시 30분 — 결심''' 남부 고지군 제1사단장은 중앙 돌파를 결심했다. 판단 근거는 두 가지였다. 병력에서 앞서 있다는 것, 그리고 시간을 끌면 의회군 증원이 도착하리라는 것이었다. 둘 다 틀린 판단은 아니었다. 실제로 병력은 3할 이상 앞섰고, 의회군 증원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었다. 문제는 '''정면 돌격이라는 수단'''이었다. '''대형 — 중대 종대''' 투입된 것은 3개 연대 약 5,000명, 대형은 '''중대 종대'''(company column)였다. 소대를 세 겹으로 겹쳐 세우고 100미터 전방에 산병선을 깔아 앞을 정리하며 전진하는 방식이다. 보불전쟁 이래 유럽 각국 군대의 표준 공격 대형이었고, 왕당파 정규 관구는 이 교범으로 훈련받았다. 중대 종대의 장점은 분명하다. '''지휘 통제가 쉽고''' 밀집한 만큼 '''돌파 순간의 충격력이 크다.''' 산개 대형은 지형을 이용해 피해를 줄일 수 있지만 일단 흩어지면 다시 모으기가 어렵고, 훈련 수준이 낮은 부대는 산개시키는 순간 통제가 안 된다. 문제는 이 계산이 '''전장식 소총 시대의 것'''이라는 데 있었다. '''오후 3시~4시 30분 — 실패''' 돌격은 실패했다. 원인은 세 가지로 정리된다. '''첫째, 사거리 계산이 틀렸다.''' 의회군 보병은 완만한 구릉의 '''반사면'''(reverse slope)에 배치되어 있었다. 능선 너머 뒤쪽 경사면에 자리 잡는 이 배치는 적 포병 관측에서 벗어나면서도 능선을 넘어오는 적을 근거리에서 때릴 수 있는 고전적 방식이다. 그 앞에는 급조된 흉벽이 있었고 병사들은 엎드려 쏘는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신형 제식 소총의 유효 사거리는 500미터를 넘는다. 왕당파 종대는 개활지를 800미터 가까이 전진해야 했다. 다시 말해 '''사거리 안에서 500미터를 걸어야 했다.''' 분당 8발에서 12발을 쏘는 후장식 소총 9,000정 앞에서 말이다. '''둘째, 종대가 표적이 되었다.''' 밀집 종대는 정면 폭이 좁고 종심이 깊다. 조준이 정확할 필요가 없다. 대충 그 방향으로 쏘면 누군가는 맞는다. 산병선이라면 빗나갔을 탄이 종대에서는 뒷줄에 맞는다. 이 문제는 1877년 [[플레브나 공방]]에서 이미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참호에 들어앉은 오스만군이 러시아군의 정면 돌격을 세 차례 격퇴했고, 유럽 각국 군대는 이를 '''보고서로 읽었다.''' 그러고는 야전 축성 강화라는 교훈만 뽑아 갔다. 방어는 고쳤는데 공격은 그대로 둔 것이다. 로엔필드는 그 결과가 실제로 나타난 자리였다. '''셋째, 포병 엄호가 없었다.''' 왕당파 야포 18문 중 절반 이상이 청동 전장포였고, 후장포조차 주퇴복좌기가 없어 발사 후 재조준에 시간이 걸렸다. 실전 지속 사격 분당 두 발로는 '''돌격을 엄호할 화력 밀도가 나오지 않는다.''' 당시 교리에서 공격 지원 포격의 목표는 방어 측을 제압해 사격을 못 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런데 18문이 분당 두 발씩 쏴 봐야 분당 36발이다. 4킬로미터 전선에 흩어진 9,400명을 상대로 이 정도는 제압 사격이라 부를 수 없다. '''연기 — 결정타''' 여기에 흑색화약이 결정타를 날렸다. 양측 수천 정이 동시에 사격하면서 전장 중앙이 흰 연기로 완전히 뒤덮였고, 왕당파 종대는 '''200미터 앞을 볼 수 없는 상태'''로 전진해야 했다. 이 시대의 전투 지휘는 육성, 나팔, 군기 세 가지로 이루어진다. 연기 속에서 육성은 사격 소음에 묻혀 닿지 않고, 나팔은 방향을 알려 주지 못하며, 군기는 아예 보이지 않는다. 선두 대대가 방향을 잃고 좌측으로 흘렀다. 그 뒤를 따르던 대대는 이를 알지 못한 채 직진했다. 대형이 갈라졌고, 갈라진 사실을 지휘관이 인지한 것은 한참 뒤였다. '''오후 4시 30분 — 정지''' 왕당파 종대는 의회군 진지 200미터 앞에서 정지했다. 돌격이 정지한다는 것은 사실상 끝났다는 뜻이다. 밀집 대형이 개활지에서 멈춰 서서 사격전을 벌이는 것은 '''엄폐한 방어 측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30분가량 사격이 오갔고 오후 5시경 왕당파가 후퇴했다. 이 돌격에서만 약 700명이 죽었다. 이날 왕당파 전사자의 3분의 2가 '''이 한 시간 반'''에 나왔다.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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